
1977년 9월 12일, 문화체육관에서 1회가 개최되었고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5]가 우승을 차지했다.기성가요계와 대비되는 캠퍼스만의 신선함과 건전함[6][7]을 주된 콘셉트로 잡아 첫 단계에서부터 대중적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가요제가 본격[보기]
1977년 9월 12일, 문화체육관에서 1회가 개최되었고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5]가 우승을 차지했다.기성가요계와 대비되는 캠퍼스만의 신선함과 건전함[6][7]을 주된 콘셉트로 잡아 첫 단계에서부터 대중적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가요제가 본격적으로 번성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생각하던 '건전함'이 무색하게도 당시 학생운동권에서는 상업주의나 퇴폐를 조장한다고 하여 대학가요제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이에 전대협-한총련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8] '통일노래한마당'이란 대안 행사를 열었다.브런치 자료1990년대 이전의 대학가요제는 그야말로 신규 음악인을 발견하는 ‘등용문’이었다. 당시에는 음반산업이 막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였고, 음악인들의 정규화된 성장 및 데뷔 과정이 없었다. 음악인들은 대학가나 일부 클럽 등에서 공연을 하며 명성을 쌓은 뒤 소수의 프로듀서에 의해 발탁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취약한 미디어 체계, 변화적인 시대상황 등으로 인해 예술에 대한 민중적 갈망은 컸고, MBC 대학가요제는 공영방송 주도의 프로그램으로 압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가요제로 자리매김해갔다.대학생이란 조건만 맞추면 되기에 대학의 지역이나 서열 상관없는 탕평책스런 입상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인서울 대학교부터 경상도나 전라도 소재 지방 대학교 까지 출신대학교가 다양하게 분포되어있으며 무한궤도의 사례같이 멤버들이 굳이 같은 대학교를 맞출 필요도 없이 타 대학교 출신끼리도 연합한 그룹도 참여가 가능하다. 게다가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재 대학교에 재학하는 유학생이나 교포들도 참여 자격이 주어진다. 본선이 열리기 전 지역예선을 별도로 가졌으며 이 지역예선은 지역MBC가 별도로 주최하여 방송했다.[9]제1회에서는 학생들의 창작곡 외에도 번안곡들도 많이 참가하였으나, 그 뒤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자작곡으로만 채워지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매 대회마다 LP판을 발행하였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상술한 대로 건전가요라든지 다른 기성가수들의 곡이라든지 해당 가요제의 참가곡이 아닌 다른 회차의 참가곡들까지 어물쩡 삽입되었다. 1회 입상곡 및 참가곡이 음반으로 나왔을 때,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가 같이 들어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함중아가 대학가요제 출신인 걸로 착각한다. 참고로 함중아는 대학에 진학한 적이 없다.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면 1977년에 개최된 제1회 MBC 대학가요제는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대상을 차지했는데 이듬해 3월, 해당 대회의 입상곡들이 2장의 LP로 제작됐다. 이 과정에서 음반을 2장 분량으로 내면서 수록곡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앨범 제작을 맡은 곳은 함중아와 양키스 멤버 출신 최동권이 운영하던 기획사였으며, 제작사는 부족한 곡 수를 채우기 위해 가요제와 무관한 노래들을 삽입했다. 대표적으로 함중아가 미리 녹음해 두었던 '내게도 사랑이'가 ‘나에게도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이외에도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얀 파도', ‘김종호와 북두칠성’의 '밤하늘 별이 빛나고' 등이 같은 방식으로 실렸다. 이 때문에 함중아가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입상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는 사례가 생겼다.대학생들의 무대라는 점에서 청춘과 낭만의 이미지가 강한 행사였고, 아예 대학가요제만을 목표로 대학에 진학하느라[10] 학업은 뒷전이었던 먹고대학생도 존재했을 지경이었다. 이처럼 80년대까지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아마추어리즘 넘치는 투박하면서도 혁신적인 음악성들로 한국 가요계에 다양성을 부여했으며 세계 가요의 물결이었던 록 밴드의 한국내 공백 또한 대학가요제에서 메웠던 셈이었다. 송골매, 마그마 등이 이런 물결속에서 출범한 하드록/메탈 밴드였다.촬영 장소도 문화체육관 또는 서울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등 실내에서 펼쳐졌으나, 주철환 PD의 아이디어로 1994년 18회 때, 처음 캠퍼스(고려대)에서 펼쳐져 이후에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리는 것이 대학가요제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대학가요제는 오래된 역사에다 가수의 등용문으로도 큰 기능을 했기 때문에 많은 MC들과 새내기 가수들이 이 대회를 통해 유명세를 얻었고, 이들 중 오늘날까지 방송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도 많다. 1970~80년대의 수상자들은 대학가요제 n주년 특집 무대에 다시 초청되어 당시 수상곡들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하며, 열린음악회나 나는 가수다 등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당시 수상곡이나 히트곡들을 간간이 리메이크되어 무대에 올라오기도 한다. 7080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컨셉트의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준 필수요소 급.[닫기]



































